히라의 철쭉에서 백로의 숲까지
이 글에서는 우선 이노우에 야스시의 초기 시 가운데 몇 편에 일정하게 드러나는 시 구성의 패턴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노우에 야스시는 산문시를 많이 썼기에 그만의 난해하고 독창적인 비유를 찾기가 힘든 작가라는 점이 '표절'을 논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어서이다. 대신 내 논리를 보강할 근거로서 시의 구성을 택했다. 당시 이노우에 야스시가 즐겨 쓴(적어도 선호했던) 패턴은 다음과 같다.
1. 과거에 무언가를 본 일이 있다.
2.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3. 지금 나는 그 무언가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한다.
이상의 시 구성을 그의 첫 시집 <북국>에 실린 서른일곱편 가운데 세 편의 시이자, <일본현대 대표시선>에도 실린 <유성> <엽총> <시리아 사막의 소년>을 통해 드러내겠다.
그런 다음 현재 <히라의 철쭉>의 다른 번역문을 찾기 힘든 관계로 직접 번역을 하여 번역문을 만들어보려 한다. 단, 유정과는 다른 번역의 방법을 택할 것이다. 즉 번역자의 주관적 해석을 최대한 배제하는 '직역'을 라인 바이 라인으로 시도하겠다. 이렇게 하면 문장이 많이 이상해지겠지만 원문과 문제의 대목을 비교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자어의 경우에는 한국식으로 음을 읽고 그 외 번역어의 선택은 가급적 해당 단어를 싣고 있는 사전 페이지의 첫머리에 나오는 것으로 하겠다. 번역 대본은 1983년 신초샤에서 초판이 발행된 <이노우에 야스시 전시집>(문고본, 1999년 10쇄)이다.
인용문의 강조는 내가 했으며 인용문 표시 및 글상자 넣기가 잘 되지 않아 인용문은 부득이 다른 서체로 구분했다.
유성
고등학교 학생시절, 일본해의 모래언덕 위에서, 홀로 망또에 몸을 감싸고 드러누워 별이 흐르는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다. 11월의 얼어붙은 성좌에서, 한줄기 푸른 빛이 반짝이며 나와 홀연히 사라지고 만 그 별의 고독한 움직임만큼, 강하게 내 청춘의 영혼을 흔들어놓은 것은 없었다. 나는 언제까지나 모래언덕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나야말로, 이윽고 떨어져내릴 그 별을 이마에 받아들일, 지상에 있어 단 하나의 인간임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십몇해의 세월이 지났다. 오늘밤, 이 나라의 한 많은 청춘의 유해(遺骸)ㅡ쇳조각과 기왓장으로 이뤄진 황량한 도시 풍경 위에 길게 꼬리를 끌며 질주하는 별 하나를 보았다. 눈을 감고 벽돌을 베개 삼은 나의 이마에는 이미 그 무엇도 떨어져내릴 성싶지 않았다. 그 한순간의 제전(祭典)의 무연(無緣)함이여, 전란의 황망(慌忙)함 속에 잃어버린 이내 청춘을 닮아, 그 별의 행방은 알 수도 없다. 다만, 언제까지나 나의 눈꺼풀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홀로 항성군에서 탈락해, 천체를 낙하하는 별의 종언이 지닌 그 놀라운 정갈함뿐이었다.
엽총
왠지 그 중년남자는 마을 사람들의 빈축을 샀으며, 그를 겨냥한 나쁜 소문들은 어린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어느 겨울 아침, 나는 그 사람이 탄띠를 꽉 매고, 코르덴 윗도리 위에 엽총을 묵직하니 매단 채, 장화로 서릿발을 밟으면서, 아마기(天城)로 가는 샛길 풀숲을 천천히 헤치고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 그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때 그 사람의 뒷모습은 지금도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물의 생명을 끊는 하얀 강철 기구로, 그처럼 차갑게 무장해야 했던 것은 어째서일까. 나는 지금도 도시의 혼잡 속에 있을 때, 문득, 그 사냥꾼처럼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천천히, 조용히, 냉정하게ㅡ그리곤, 인생의 허연 강바닥을 엿본 중년의 고독한 정신과 육체 양쪽에, 동시에 배어들 만한 중량감을 눌러 찍는 것은 역시 저 닦고 닦아서 번쩍이는 하나의 엽총 말고는 없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시리아 사막의 소년
시리아 사막 가운데 영양떼와 함께 살고 있는 벌거숭이 소년이 발견되었다고 신문은 보도하며 그 사진을 실었다. 더벅머리 옆얼굴은 어쩐지 차갑고, 시속 오십 마일을 달린다는 아름다운 두 다리를 지닌 자태는 묘하게 슬펐다. 알아선 안될 것을 알고, 보아선 안될 것을 본 것 같은, 그때 나의 당황스러움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그 뒤 굶주린 노인을 보거나, 혹은 마음 거만하고 고명한 예술가를 만나고 있는 그런 때, 나는 문득 어딘가 먼 곳에, 그 소년의 눈길을 느끼곤 한다. 시리아 사막의 한 점을 기점 삼아, 영양의 생태를 뒤쫓아 완만하게 샘물을 돌아, 곧장 별에까지 뻗은 그 소년이 지닌 운명의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은, 다시 말해서 그 운명이 그린 순수회화적 곡선의 정갈함은, 그럴 때면 언제나, 세상 인간들을 한결같이 불행해 보이게 하는 이상한 슬픔을 애오라지 되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比良のシャクナゲ
むかし「写真画報」という雑誌で"比良のシャクナゲ"の写真をみたことがある。
(옛날 <사진화보>라는 잡지에서 '히라의 철쭉'이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そこははるか眼下に鏡のような湖面の一部が望まれる比良山界の頂きで、あの香りの高く白い高山植物の群落が、その急峻な斜面を美しくおおっていた。
(그곳은 아득히 눈 아래로 거울 같은 호면의 일부가 바라보이는 히라 산계의 꼭대기로서, 저 향기 높고 하얀 고산식물의 군락이, 그 급준한 사면을 아름답게 덮고 있었다.)
その写真を見た時、私はいつか自分が、人の世の生活の疲労と悲しみをリュックいっぱいに詰め、まなかいに立つ比良の稜線を仰ぎながら、湖畔の小さい軽便鉄道にゆられ、この美しい山巓の一角に辿り着つく日があるであろうことを、ひそかに心の期して疑わなかった。
(그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언젠가 내가, 인간 세상의 생활의 피로와 슬픔을 륙색 가득히 짊어지고, 눈앞에 선 히라 능선을 우러러보면서, 호반의 작은 경편철도에 흔들리면서, 이 아름다운 산정의 일각에 다다를 날이 있을 것임을, 남몰래 마음에 기약하여 의심하지 않았다.)
絶望と孤独の日、必ずや自分はこの山に登るであろうと—。
(절망과 고독의 날, 반드시 나는 이 산에 오를 것이라고ㅡ.)
それからおそらく十年になるだろうが、私はいまだに比良のシャクナゲを知らない。
(그 이후 아마 십년이 되겠지만, 나는 아직껏 히라의 철쭉을 알지 못한다.)
忘れていたわけではない。
(잊고 있는 것은 아니다.)
年々歳々、その高い峰の白い花を瞼に描く機会は私には多くなっている。
(연년세세, 그 높은 봉우리의 흰 꽃을 눈꺼풀에 그리는 기회는 내게는 많아졌다.)
ただあの比良の峰の頂き、香り高い花の群落のもとで、星に顔を向けて寝る己が睡りを想うと、その時の自分の姿の持つ、幸とか不幸とかに無緣な、ひたすらなる悲しみのようなものに触れると、なぜか、下界のいからる絶望も、いかなる孤独も、なお猥雑なくだらぬものに思えてくるのであった。
(다만 저 히라 봉우리 꼭대기, 향기 높은 꽃 군락 곁에서, 별로 얼굴을 향하고 잠들 내 잠을 생각하면, 그때의 내 모습이 갖는, 행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와 무연한, 한결같은 슬픔과 같은 것에 접하면, 왠지, 하계의 어떠한 절망도, 어떠한 고독도 한층 외잡한 하찮은 것으로 생각되어오는 것이었다.)
이상이다.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후 이 문제에 대해서 쓰지 않겠다. 나는 내 근거를 보강하고 싶었을 뿐이고 딱히 다른 이유는 없다.